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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필수적 피의자심문제 도입을 환영하며 (법률신문 2003. 9. 1.5자)

[시론] 필수적 피의자심문제 도입을 환영하며

                                     황정근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최근 법무부 정책위원회는 구속영장심사에서의 필수적 심문제, 구속영장에 대한 항고제도의 도입 등을 심의하고 있어 조만간 그 입법추진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나 필수적 피의자심문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그 동안 법무부가 일관되게 이를 반대해왔던 점에 비추어볼 때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아울러 검찰이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에 대하여 영장청구 전에 피의자를 면담하는 제도를 확대실시하기로 하였다는 것은, 영장심사에서 ‘청문’이 가지는 이론적·실천적 의미를 늦게나마 인식한 결과로서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된다.

잘 알다시피 현재의 임의적 구속영장실질심사제는 정부의 발의로 1995년 12월 29일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1997년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시행 초기에 심문율과 영장기각률에 관한 법원과 검찰의 견해차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이건개·조찬형 의원 등 28명의 개정안 발의를 기화로 우여곡절 끝에 급기야 그 해 11월 18일 대선을 앞 둔 어수선한 시기에 국회의원 126명의 찬성으로 체포피의자측의 신청이 있어야만 심문할 수 있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그 당시 법무부는 개정안 심의과정에서 법사위에 대한 의견조회 회신을 통하여, 위 제도가 입법례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으며 위헌적 제도라면서 그 폐지(1안) 내지 예외적 심문(2안)을 주장하였고, 대법원은 개정안에 반대하고 오히려 필수적 심문으로 개정하여야 헌법정신과 국제인권규약에 합치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법무부와 검찰은 재야, 학계, 시민단체, 심지어 사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 개정을 결국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법원은 공보관을 통하여 위 개정안 통과에 대하여, ‘우리의 국가적 위신을 심각히 손상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사법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졸속입법으로서 훗날 국민과 역사에 의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정이 이와 같은 이상 법무부의 방향 전환을 환영하면서도 몇 가지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만약 원칙적·필수적 심문에 대한 그 동안의 반대가 오류였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이번 입법이 추진되는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법무부의 이러한 입장 선회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나 해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명분도 없이 반대론을 거둬들이는 형국이어서는 국가기관의 체면은 말이 아니고, 이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할 뿐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피의자가 실질심사를 신청하고 있어 대체로 영장실질심사제는 국민의 법생활 속에 정착되었다고 평가되는 마당에, 이제 와서 필수적 심사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은 큰 실익도 없으려니와, 그래서 일각에서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지적할 것은, 왜 이제서야 법 개정에 착수하는가이다. 유엔 인권이사회(자유권규약위원회)는 이미 1999년 11월 5일 한국정부의 제2차 보고서에 대한 최종검토의견의 ‘주요관심분야 및 권고’ 제13항에서, ‘피의자의 구금에 있어서 피의자의 신청이 있을 때에만 법관의 사법심사가 행하여지는 형사소송법은, 형사상 체포·억류된 자는 누구나 즉시 법관 기타 사법관에게 인치되어야 한다고 규정한 자유권규약 제9조 제3항과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지적하였는데도, 그 회의에 참석하였던 인권주무부서인 법무부가 그 동안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러니 위 2차 보고서에서 정한 제3차 보고서 제출시한인 2003년10월31일이 다가오자 어떻게든 그 안에 법안이라도 국회에 제출하여야 하는 상황을 의식하고 마지못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셋째로, 끼워넣기식 입법추진 발상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번 검찰청 내 피의자 독직폭행치사사건 후에 마련된 변호인의 신문참여권 보장과 관련한 형소법 개정안에서도 참고인 구인제를 함께 추진함으로써 이미 대법원과 변협의 반대에 봉착하였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법무부의 형소법 개정 추진은 국민의 입장보다는 검찰의 입장이 너무 강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외부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책위원회를 통한 이번 입법 추진 과정에서도, 필수적 심문제를 도입한다고 내세웠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영장기각에 대한 항고제도의 도입이나 피의자심문조서의 법정증거화 등 검찰의 필요에 의한 제도 도입에 중점이 있다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국민적 시각에서 볼 때 참고인 구인제, 영장 삼심제가 이 시점에서 그렇게 긴요한 사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인신구속제도는 일련의 절차가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체가 일관되게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법무부가 개정을 추진하는 것 외에도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의 보석제 도입과 국선변호의 확대, 피의자의 보석청구권 신설, 긴급체포의 남용 억제책의 마련 등 국민을 위한 개선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특정기관의 편의에 기울어 구속절차를 그와 같이 땜질식으로 고쳐서는 곤란하다.

모쪼록 국민의 입장에 서서 전체적인 조망하에 학계와 관련기관과의 충분한 협의와 심도 있는 연구·검토를 거쳐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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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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